LG전자는 오랫동안 글로벌 전자 산업에서 기술 혁신과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동시에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실적 악화와 인력 구조조정, 중국 기업과의 협력 확대 논의 등은 기업의 미래 전략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TV 사업 부문에서의 대규모 적자와 가전 부문에서의 경쟁 심화는 단순한 단기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1. TV 부문 위기와 OLED 전략의 한계
LG전자는 한동안 OLED를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규정하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습니다. 이 전략은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의 흐름과는 간극을 보였습니다. OLED는 명암비와 화질에서 뛰어나지만,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수율이 낮아 대량 생산에 불리합니다. 그로 인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여전히 높고, 대중화에는 제약이 따릅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QLED를 앞세워 가격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을 확보했고, 글로벌 시장에서 더 넓은 소비자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근 TV 시장의 핵심 트렌드가 초대형 제품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생산 단가가 높은 OLED는 구조적 불리함을 안고 있습니다. LG가 기대했던 파리 올림픽 특수도 교체 수요 감소와 경기 침체라는 외부 요인에 발목이 잡히면서 재고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OLED 중심의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2. 희망퇴직 확대와 내부 불안
LG전자의 위기는 조직 운영에도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최근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희망퇴직은 수백 명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라 경영진이 구조적인 위기 상황을 체감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력 구조조정이 특정 사업 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전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인건비 절감 효과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숙련 인력의 이탈과 내부 사기 저하라는 장기적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특히 연구개발 역량이 핵심 경쟁력인 전자 산업에서 인력 축소는 곧 혁신 속도의 둔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부 직원들의 불안감이 커질수록 조직의 응집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단순히 재무적 손익 계산을 넘어,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잠식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중국 기업과의 협력과 그 이면
LG전자는 공급망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기업과의 협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JDM(Joint Development Manufacturing) 전략을 통해 기술 개발과 생산을 동시에 진행하려는 시도는 비용 절감과 시장 대응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부품 조달과 생산 네트워크에서 세계 최적의 클러스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LG가 이를 활용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유출과 브랜드 가치 희석이라는 리스크입니다. 중국 업체와의 협력 과정에서 핵심 기술이 노출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생산 효율이 개선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LG=프리미엄’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중국 생산이라는 레이블과 결합되면서 소비자 신뢰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중국 협력은 양날의 검과 같아, 명확한 보안 시스템과 기술 보호 장치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습니다.
4. TV 철수 가능성과 차별적 요소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과감히 철수한 전례는 TV 사업 철수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업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스마트폰 사업은 하드웨어 경쟁력에서 밀려 수익성이 완전히 상실된 상황이었지만, TV 사업은 여전히 WebOS라는 플랫폼 수익 모델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광고, 콘텐츠, 구독 서비스 등 추가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적자라는 이유로 철수를 단행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다만, 적자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규모 축소나 사업 구조 재편은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TV 사업은 단순한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 플랫폼 비즈니스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5. B2B 사업 확대와 체질 개선 시도
LG전자가 제시하는 해법 중 하나는 B2B 사업 강화입니다. 데이터센터용 공조기, 에너지 절감형 솔루션 등은 글로벌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분야로 꼽힙니다. LG는 전체 매출에서 B2B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을 넘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그러나 B2B 시장은 삼성뿐만 아니라 글로벌 전문 기업들도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LG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격 경쟁이 아니라, 고객 맞춤형 서비스, 친환경 기술, 유지보수 네트워크 등에서 차별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B2B 분야는 초기 투자와 신뢰 구축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기적 성과보다는 중장기적 비전을 기반으로 한 지속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6. 가전 부문의 경쟁 심화
LG전자의 또 다른 고민은 가전 부문입니다. 오랫동안 ‘가전 명가’로 불려온 LG는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등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이 초저가 전략과 빠른 기술 추격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 LG가 강조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LG는 이를 대응하기 위해 핵심 기술을 암호화한 상태에서 중국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임시방편에 가깝습니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혁신적인 기술력과 디자인, 사용자 경험을 통해 차별화를 강화해야 합니다. 프리미엄 가전의 본질은 단순히 스펙이 아니라 사용자가 체감하는 가치와 만족감에 있기 때문에, LG가 이 부분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보여줄 수 있어야 경쟁 심화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LG전자가 직면한 위기는 일시적인 실적 부진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과 시장 대응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입니다. OLED 중심 전략의 한계,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발 가격 공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기업의 불안 요소로 떠올랐습니다. 이제 LG가 생존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B2B 사업과 같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여 매출 구조를 다각화해야 합니다. 둘째, WebOS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 전략을 강화해 하드웨어 의존도를 낮춰야 합니다. 셋째, 중국 협력의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하면서도 기술 혁신을 통한 차별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위기는 분명 LG전자에 큰 도전이지만, 동시에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습니다. LG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향후 글로벌 전자 산업에서의 입지를 결정할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