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산업화 시기에 번성했던 광산은 한 세대가 지나며 대부분 문을 닫고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과 함께 이 버려진 공간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산업이 확대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센터의 수요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는 막대한 전력, 안정적인 냉각 환경, 넓은 공간이 필수적인데, 바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가 바로 폐광입니다. 한때 산업의 종말을 상징하던 공간이 이제는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공간과 에너지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AI 시대, 데이터 센터 수요의 폭발적 증가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AI 모델이 발전하고, 초거대 언어모델이 등장하면서 그 운용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증가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미래의 경쟁력은 GPU 수와 데이터 센터의 용량으로 결정된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데이터 인프라 확보는 국가와 기업의 핵심 전략 과제가 되었습니다.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등 글로벌 리더들은 데이터 센터를 ‘21세기의 발전소’로 표현합니다. 즉, 과거 산업 혁명에서 석탄과 철강이 중심이었다면, 오늘날의 혁명은 데이터와 전력이 중심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도심형 데이터 센터는 공간 제약, 냉각 비용, 전력 부족 문제에 직면했고, 그 대안으로 지하 공간, 특히 폐광이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폐광은 단순히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AI와 클라우드 산업이 요구하는 고성능, 고안정성 환경을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 해답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 폐광이 데이터 센터로 주목받는 이유
폐광은 본래 깊고 단단한 암반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의 진동이나 자연재해에 강합니다. 이러한 안정성은 고가의 서버 장비를 보호하고, 데이터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합니다.
또한 폐광 내부는 외부보다 기온이 낮고 연중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미국 미주리주의 스프링필드 광산이나 노르웨이의 류피오르 광산에서는 이미 대형 데이터 센터가 운영 중이며, 수천 대의 서버가 지하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 도심형 센터보다 30% 이상 낮은 냉각 비용을 기록하며 친환경 데이터 인프라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폐광은 단순히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 대응형 데이터 인프라 구축의 핵심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3. 폐광 활용의 주요 장점
1) 건설 비용 절감
폐광은 이미 구조적으로 완성된 공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려면 부지 매입, 기반 시설 공사, 전력 설비 구축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폐광은 이러한 초기 단계의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지하 암반층은 이미 단단히 안정화되어 있어 추가적인 구조 보강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실제 사례로, 노르웨이의 Lefdal Mine 데이터 센터는 폐광 구조를 활용해 일반 데이터 센터 대비 약 40%의 건설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에너지 효율성과 재생 에너지 연계
폐광 주변은 종종 수력이나 풍력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유럽 국가들은 인근 수력 발전소와 직접 전력망을 연결해 전력의 거의 100%를 재생 에너지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며, ESG 경영 트렌드에도 부합합니다.
3) 안정적인 온도 유지
지하 공간은 외부 기후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냉각 시스템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러한 특성은 서버의 안정성을 높이고 장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4) 지하수 냉각 시스템의 효율성
지하수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자연적으로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에서는 이러한 지하수를 열 교환 시스템에 활용해 서버에서 발생한 열을 신속하게 외부로 배출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존 공랭식 냉각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유지보수 비용 또한 적습니다.
4. 한국의 폐광, 데이터 산업의 새로운 자원
한국은 전국적으로 300곳이 넘는 폐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강원도, 충북, 전라도 지역에는 과거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던 대형 광산이 다수 존재합니다.
이들 지역은 지하 공간이 넓고 구조가 견고해 데이터 센터로 전환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은 또한 전력 인프라 측면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전력의 고품질 전력 공급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신뢰성이 높으며, 정전 위험이 낮아 고가의 IT 인프라를 운영하기에 적합합니다.
게다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 덕분에 풍력, 조력, 해상 태양광 등 다양한 재생 에너지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프라적 기반 위에서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최근 한국을 ‘AI 수도’로 육성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데이터 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5. 실제 사례: 전라남도 장성의 건동광산 프로젝트
국내에서도 폐광의 디지털 전환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한 건동광산은 국내 최초로 AI 데이터 센터로 개발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형 폐광 전환 모델의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이 광산은 깊이 약 221미터, 총 길이 55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지하 공간 대부분이 안정화되어 있습니다.
현재 해당 부지는 냉각 시스템 구축과 전력 인입선 확장 공사가 병행되고 있으며, 완공 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형 데이터 센터로 운영될 예정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술적인 혁신을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동반하고 있어 폐광 재개발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6. 남은 과제와 향후 전망
폐광 데이터 센터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째, 대부분의 폐광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과 통신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광케이블망과 고속 데이터 전송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며, 교통 인프라 개선도 필수적입니다.
둘째, 환경 관리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폐광 내 지하수나 토양 오염이 존재할 경우, 사전 정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셋째, 관련 법규와 인허가 절차 역시 명확히 정비되어야 합니다. 데이터 센터로의 용도 전환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광을 활용한 데이터 센터는 기술적, 환경적,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민간 투자가 결합된다면, 한국은 충분히 아시아 데이터 인프라의 핵심 국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광은 과거 산업의 끝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시작점이 되고 있습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막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과 냉각 효율, 그리고 친환경적 운영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공간이 바로 폐광입니다. 이제 버려진 광산은 기술의 심장으로 다시 살아나며, 그 깊은 지하에서 새로운 산업의 맥박이 뛰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폐광이 재생 에너지와 첨단 기술을 결합한 지속 가능한 데이터 센터로 변모한다면, 이는 단순한 산업 변화가 아닌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폐광 역시 그 흐름 속에서, AI와 데이터 경제의 중심축으로 부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