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발란스, 한국에서 아디다스를 넘어선 성장 전략

뉴발란스는 오랫동안 ‘편안함’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한국에서는 단순한 기능성 신발을 넘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변모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장의 작은 한켠에 머물렀던 브랜드가, 불과 10여 년 만에 아디다스를 제치고 국내 스포츠 브랜드 2위로 부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트렌드를 읽는 감각, 철저한 현지화, 그리고 이랜드의 정교한 경영 전략이 있었습니다.

1. 미국에서의 출발과 한국에서의 인식 변화

뉴발란스는 1906년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되어, 기능성과 안정성을 강조한 러닝화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직업용 신발을 제작하며 ‘편안함’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 들어온 이후, 이 브랜드는 단순히 러너나 운동 애호가를 위한 신발이 아닌, ‘감성적 스타일’과 ‘지적인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뉴발란스 990을 착용한 모습은 한국 소비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단정하면서도 실용적인 그 이미지가, 패션 감각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미학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시기부터 뉴발란스는 기능 중심의 운동화를 넘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신발’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로 변화했습니다.

2. 초기 시장의 어려움과 인지도 확산의 시작

2000년대 초반, 뉴발란스의 한국 매출은 250억 원 수준으로 당시 아디다스의 3,000억 원에 비하면 매우 작았습니다. 브랜드 인지도 역시 낮았고, 소수의 운동 애호가들이 찾는 한정된 시장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영화 마라톤이 개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주인공이 착용한 뉴발란스 러닝화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 무렵 ‘러닝’이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확산되면서, 뉴발란스는 ‘러닝족의 신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화에는 한계가 있었고, 보다 체계적인 운영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그 변화를 이끈 주체가 바로 이랜드였습니다.

3. 이랜드의 전략적 참여와 브랜드 전환점

이랜드는 푸마의 한국 운영을 성공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뉴발란스와 손을 잡았습니다. 당시 이랜드는 브랜드의 가능성을 단순한 기능성 제품이 아닌, 패션 브랜드로 확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랜드의 첫 번째 전략은 ‘스타 마케팅’이었습니다.

유명 연예인과 셀럽을 활용해 브랜드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제품 기획 단계부터 유행을 빠르게 반영하고, 신발뿐 아니라 의류, 가방, 액세서리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확장해 브랜드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랜드의 철저한 기획력과 로컬 소비자 이해도가 결합되면서, 뉴발란스는 단기간에 대중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4. 스티브 잡스 효과와 브랜드 대중화의 가속화

뉴발란스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스티브 잡스 효과’였습니다. 아이패드 발표 당시 잡스가 뉴발란스 992를 신은 모습이 공개되면서, 국내외 소비자들의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이랜드는 이를 적극 활용해 ‘지적인 감성’, ‘단정한 일상 스타일’을 강조한 광고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이 시기의 마케팅은 단순한 제품 홍보를 넘어, 소비자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뉴발란스를 신는 것이 하나의 ‘취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브랜드는 기능성과 패션성을 동시에 갖춘 균형 잡힌 이미지로 발전했습니다.

5. 매장 전략과 상품 포트폴리오의 혁신

이랜드는 단순히 마케팅에만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매출 데이터와 소비자 동선을 분석하여 비효율적인 매장은 과감히 철수시키고, 트렌드 중심 상권에 매장을 재배치했습니다.

또한 ‘제품 다양화’를 통해 매출 구조를 안정화시켰습니다. 신발 외에도 의류, 가방, 액세서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브랜드의 존재감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의류 부문은 국내 생산이 가능해 수익성이 높았으며, 반팔 티셔츠와 패딩 등 시즌 상품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확보했습니다.

이러한 운영 전략은 뉴발란스를 단순한 신발 브랜드가 아닌, ‘토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6. 530 모델의 부활과 글로벌 흥행

뉴발란스의 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 모델이 바로 ‘530’입니다. 1990년대 출시된 이 모델은 오랫동안 단종 상태였지만, 이랜드는 ‘놈코어(Normcore)’ 패션 트렌드를 포착해 본사에 재출시를 제안했습니다.

회색 계열의 절제된 디자인은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어떤 패션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결과적으로 530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브랜드의 재도약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에서 시작된 부활이 글로벌 시장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이랜드의 트렌드 분석력과 실행력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7. 본사 직진출 이슈와 향후 과제

최근 뉴발란스 본사는 한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며, 2027년 이후 직진출을 추진 중입니다. 이는 과거 푸마가 겪었던 상황처럼 단기적인 시장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랜드는 이미 이에 대비한 다층적인 전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로컬 시장에 대한 이해, 유통망 관리, 그리고 브랜드 충성도를 기반으로 이랜드는 본사와의 협업 구조를 유지하며 한국 시장 내 입지를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향후 과제는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본사와의 관계를 유연하게 조율하는 것입니다.

뉴발란스의 한국 성공은 단순한 유행이나 운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랜드의 정교한 현지화 전략, 빠른 트렌드 감지 능력, 그리고 브랜드 감성의 재해석이 만들어낸 복합적 성취입니다.

‘편안한 신발’에서 출발해 ‘감성적 패션 브랜드’로 진화한 뉴발란스의 여정은, 글로벌 브랜드가 지역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앞으로 본사 직진출이라는 도전 속에서도, 뉴발란스가 축적해온 현지화 노하우와 브랜드 감성이 어떻게 진화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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