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화려한 관광지보다 한적한 거리에서 도시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유명한 맛집이나 명소를 찾기 마련이지만,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오히려 예기치 않게 마주친 작은 골목의 풍경이었습니다. 부산 여행 중 우연히 들른 부산대학교 앞 거리가 그랬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대학가의 상업지구처럼 보였지만, 골목을 따라 걸으며 마주한 풍경은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거리 곳곳엔 닫힌 셔터와 임대 공고가 붙은 유리창이 즐비했고,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과거의 활기찬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단지 쓸쓸함을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저는 그곳에서 도시 상권이 맞닥뜨린 경제적 구조 변화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한때 부산 3대 상권 중 하나로 불리던 부산대 앞 거리는 이제 공실률이 23.4%로, 부산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최대 27%까지 치솟았다고도 보도되었으며, 현재 약 340여 개 점포 중 95개가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그 거리를 걸으며 마주한 풍경은 무척 낯설었습니다. ‘임대문의’가 붙은 유리창, 곰팡이 낀 간판, 먼지 쌓인 쇼윈도우 등,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한때의 활기를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가간 상인께서 “축제 때는 이 골목이 발 디딜 틈이 없었죠. 지금은 하루 매출이 2만 원도 안 되는 날도 많습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표정에서 격한 피로감과 단단한 애정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이 상권이 침체된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생 자체의 수가 줄어들었고,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소비가 크게 위축되며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되었습니다. 더불어, 임대료 상승이라는 구조적 압박 앞에 영세 소상공인들이 대거 퇴장했고, 결과적으로 상권은 비어버린 공간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숫자로만 설명되기 어려운 도시의 정체성과 기억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대학가는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젊은 세대의 문화와 교류가 살아 숨 쉬던 장소였습니다. 책과 음악, 커피와 대화가 얽힌 특별한 시간이 쌓이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부산대 앞 거리는 그런 문화적 체취를 거의 잃은 상태입니다. 공간의 정체성이 사라지면, 사람들도 그 공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금정구를 비롯한 부산시는 대대적인 상권 활성화 사업에 나섰습니다. 내년부터 5년간 부산대 ‘하이브 상권’을 포함해 총 60억 원의 국비를 투입하며, 부산시 전체로는 사하구 하단역, 기장시장과 함께 총 160억 원의 예산을 투여할 계획입니다. 거리는 테마 골목으로 재정비하고, 조명 및 사이니지 설치, 팝업 스토어 운영, 문화 축제 개최 등을 통한 ‘골목 르네상스’를 추진합니다.
그러나 예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상권이 진정으로 살아나는 것은 ‘사람’이 그 공간을 다시 찾을 때입니다. 상인의 삶, 지역 주민의 기억, 그리고 여행자와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있어야만 그곳은 다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여행은 단지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오르던 추억과 마주하고, 잊혀진 풍경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얻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번 부산 여행의 기억은 바다나 어묵이 아닌 조용한 골목에서 마주한 빈 점포와 희미한 불빛이었습니다. 그 골목은 분명 변화하고 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산대 앞 거리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하나의 지역 경제를 직접 체감한 시간이었습니다. 상권은 단지 매출의 높고 낮음으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이 함께 얽혀 있는 유기적인 공간입니다.
부산대 상권의 침체는 단일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대학가·지역상권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상징합니다. 단기적인 지원과 물리적 정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과 이야기가 모여드는 장소로 거듭나야 진정한 회복이 가능합니다.
현장에서 느낀 이 조용한 경제의 언어는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변화의 흐름이었습니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서 지역 상권의 생명력이 무엇으로 유지되고 또 사라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