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부 해안의 관문 도시 부산은 바다만큼이나 깊고 넓은 매력을 가진 도시입니다. 특히 ‘서면’은 오랜 시간 동안 부산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고, 다양한 소비문화가 밀집된 상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패션, 미식, 문화, 유흥이 어우러지는 그 복합적인 매력은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주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부산을 방문할 때면 저는 늘 서면을 들러야 비로소 여행이 완성된 듯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최근 뉴스에서 서면 상권의 공실률 증가, 임대가 하락, 젠트리피케이션 등 도시 상권의 변화 흐름을 접하면서 단순한 방문을 넘어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 거리의 흐름, 소비 패턴, 상점 구성 등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을 피부로 느끼고 이를 통해 지금의 서면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1. 서면 거리의 전반적 분위기
제가 서면을 찾은 날은 토요일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서면역 2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활기로 가득했습니다. 거리엔 데이트하는 연인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쇼핑하는 청년들, 혼자 이어폰을 끼고 거니는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하상가에 들어서자 ‘세일’ 표시가 붙은 패션 매장들 앞엔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무신사 오프라인 스토어와 10대 감성의 스트릿 브랜드 매장 앞엔 긴 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밝고 북적인 분위기 뒤편에는 조금 다른 얼굴도 숨어 있었습니다. 서면 중심 거리에서 골목으로 두 블록쯤 들어서면, 사람들이 뜸한 건물 1층 상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제가 예전에 방문했던, 늘 사람들로 붐볐던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가 비어 있었고, 유리창엔 "임대 문의", "권리금 없음"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활발한 중심 상권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이 정적은, 서면이 여전히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2. 업종 구성의 다양성과 변화
서면의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바로 업종 구성입니다. 단일 프랜차이즈 중심의 상권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하는 젊은 창업자들의 공간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예컨대 서면 1번가 골목에서는 '혼술족'을 겨냥한 1인 소주 포차가 눈에 띄었는데, 독립된 부스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무인 편의점형 과자 할인점'은 어른들 향수를 자극하는 옛날과자를 가득 진열해 두었고, 계산까지 완전 셀프로 이루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가게의 한쪽 벽면에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유도하는 포토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골목에서는 작은 아틀리에 분위기의 공방형 매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문구류와 디퓨저, 향초를 직접 제작하거나 이름을 새겨 넣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는데, 제가 들어갔을 땐 20대 사장님이 고객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며 제품을 소개해주고 있었습니다. 물건 하나를 팔기보다, 브랜드 이야기와 창작 과정을 함께 전달하려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경험 중심 매장들의 등장은 단순 상업 공간을 넘어, 서면이 하나의 문화적 실험 무대로 재편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소비자 역시 단순한 소비에서 벗어나 ‘무엇을 샀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고, 서면은 그 수요에 발맞춰 움직이고 있는 듯했습니다.
3. 유동 인구와 시간대별 특성
서면을 거닐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간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거리의 분위기였습니다. 오후 2시쯤부터 사람들이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특히 5시가 넘으면 거리는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해 저녁 6~8시 사이에는 말 그대로 ‘축제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메인 스트리트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과 버스킹이 펼쳐졌고, 먹자골목에서는 줄을 선 손님들로 인해 이동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20~30대였으며, 커플들이 삼삼오오 골목을 누비고, 친구들과 노포에서 저녁 식사를 하거나, 카페테라스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흔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한 셀프사진관 앞에 7~8명의 청년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포즈를 고민하는 모습이었고, 반대편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켜고 혼자 작업하는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이는 서면이 단순 유흥 공간을 넘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소비 공간임을 보여주는 단면이었습니다.
반면 오전 11시 이전까지는 비교적 한산했으며, 많은 상점들이 이른 시간에는 문을 열지 않거나 오후에 영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부 매장은 주말에만 운영하거나 브런치 시간대에만 문을 여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으며, 이는 서면 상권이 특정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4. 상권 재생의 현장
서면 남쪽에 위치한 전포동 일대는 흔히 ‘전포카페거리’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서 지역 상권의 ‘재창조 실험실’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성 넘치는 독립 카페들, 편집형 소형 갤러리, 핸드메이드 소품점을 비롯해 작은 커뮤니티 공간까지 어우러져 마치 도심 속 감성마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제가 방문한 한 반지하 카페는 사장님의 철학이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조명부터 테이블 배치, 음악 선정까지 모두 직접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으며, 메뉴판은 손글씨로 적혀 있었고 각 메뉴에는 창업 배경이 짧게 적혀 있어 커피 한 잔에도 이야기를 담으려는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음료를 소비하는 공간이 아닌, 일상과 취향이 교차하는 작은 문화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면 2번가 일대는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었습니다. 구청 주도로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밝은 색감의 벽화가 골목을 채우고 있었고, 주말에는 지역 청년들이 참여하는 플리마켓이 열려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상인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정보에 따르면, 일부 매장은 NFT와 연계한 브랜드 마케팅을 실험하거나 조리 로봇을 활용한 체험 부스를 설치해 새로운 소비문화를 실험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임대 매장을 넘어서 기술과 예술, 지역성과 경제가 융합되는 실험 공간으로서 서면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5. 문제점과 한계
겉으로 보기에 서면은 여전히 활기가 넘치지만,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공실률이 높은 이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예전에 클럽, 대형 헌팅포차 등으로 붐볐던 상가들은 이제 불이 꺼진 채 방치되어 있거나, 낮 시간에는 전혀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뚜렷했으며, 일부 구역은 ‘주말 야간 전용 상권’으로만 국한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지나친 건물 한 곳은 3층까지 전층이 공실이었고, 1층 유리문에는 “권리금 없음”, “즉시 입주 가능”, “단기 계약 환영” 같은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건물 앞에는 부동산 광고판이 무려 세 곳 이상 걸려 있었고, 동행한 친구는 “10년 전 이곳은 밤마다 대기 줄이 있던 곳”이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 한 분은 “서면은 회전율이 빠르고 유동 인구도 많지만, 그만큼 수익성이 낮은 업종이 많고 리스크도 큽니다. 가게를 열었다가 6개월 안에 접는 경우도 허다하죠”라며 현재 상권의 불안정성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서면의 업종 생존율이 낮고, 창업자 입장에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또한, 상권 재생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서면에서 소규모 식당을 운영해 온 한 자영업자는 “임대료가 두 배 가까이 뛰었는데, 옆 건물은 다 서울 자본이 들어온 프랜차이즈로 바뀌었다”며 허탈감을 드러냈습니다. 새로운 시도와 트렌디한 변화가 긍정적 요소인 동시에, 기존 지역 상권 생태계와의 갈등도 함께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서면은 다양성과 에너지로 살아있는 상권이지만, 동시에 속도에 비해 방향성이 정리되지 않은 변동성 높은 상권이라는 평가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활기 이면의 공실, 단기 창업 열풍, 임대료 상승, 지역 상인의 퇴출 문제 등은 앞으로 서면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부산 서면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변화하는 도시 상권의 현장을 목격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여전히 활기를 유지하고 있는 서면은 과거의 번화함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비록 공실 문제나 경쟁 심화라는 도전이 존재하지만, 서면 특유의 입지 조건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도는 상권 재생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서면이 전통과 변화, 그리고 창의성이 공존하는 도시의 얼굴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